2024년 5월 18일 오후,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이 거주하는 안산시 단원구 주택가에는 경찰이 설치한 특별치안센터가 외로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얼마 전 조두순이 야간 외출 금지 명령을 어긴 혐의로 징역형을 받고 재차 수감돼서인지 센터 내부에는 경찰 인력이 없었다.
하지만 인근 수원에 연쇄 성폭행범 박병화(40)가 전입했다는 소식에 이곳 주민들은 4년 전 조두순의 출소 당시를 회상하며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주민 A씨는 "조두순이 밤에 외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이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더이상 국가에만 안전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이제 나의 안전은 스스로 지켜야겠다는 마음뿐"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수원시 팔달구 한 오피스텔 앞에는 가로 4m, 세로 3m, 높이 2.6m 크기의 컨테이너 초소가 설치됐다. 이 오피스텔은 박병화가 이사한 곳이다. 1년 7개월 만에 화성시 봉담읍 원룸촌에서 인계동으로 거주지를 옮겼다는 소식에 지역사회가 불안감으로 들썩이고 있다. 주민들의 우려가 쏟아지자 수원시는 긴급 대책 회의를 열고 오피스텔 정문 앞에 방범용 초소를 설치했다.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에 이어 20년 전 다수의 여성을 상대로 연쇄 성폭행을 저지른 박병화까지 경기도가 고위험 성범죄자 이주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다. 굵직한 범죄를 일으킨 이들이 출소할 때마다 전국적인 공분을 불러일으켜 사회적 피로감이 상당하지만, 거주지 제한 외에는 별다른 대책 논의가 사실상 전무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022년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피해자의 평균 연령은 13.9세로 2017년(14.6세)에 비해 0.7세 낮아졌다. 피해자 중 '16세 이상'의 비중은 2017년 46.3%에서 2022년 33%로 감소한 반면, 6세부터 15세까지의 비중은 같은 기간 53.7%에서 67%까지 증가했다.
또한 경기 지역 내 신상공개가 결정된 성범죄자 수는 무려 696명(22.4%)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 때문에 출소 성범죄자가 입주한 권역의 주민들은 매번 불안감을 호소한다. 이러한 우려의 불씨는 지역사회에만 그치지 않고 전국적으로 비화해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활발히 거론되는 해결책 중 하나가 '성범죄자의 거주지 제한'이다. 법무부는 13세 미만의 아동을 대상으로 하거나 3회 이상 성폭행을 저지른 전자감독 대상자를 상대로 한 '한국형 제시카법'을 입법예고했다.
제시카법은 2006년 미국 플로리다주에 도입된 법으로, 신상정보가 등록된 성범죄자는 출소 이후 반경 2천 피트 내 학교나 공원 근처에서 거주가 제한된다. 플로리다주뿐만 아니라 미국 각 주에서 비슷한 성격의 법이 시행되고 있다.
김우석 법무법인 명진 변호사는 "전자장치 부착, 화학적 거세 등 재범 예방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은 거의 다 사용했다. 그래서 나온 게 '거주지 제한' 조치"라며 "위헌적 요소가 있을 수 있어 재범 위험률이 높은 대상자에게만 시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민숙 피해자통합지원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기본적으로 성범죄자에 대한 보호 관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의 분노가 큰 것"이라며 "'사후 처방'에 많은 예산이 들어가지 않게 제시카법 등 '사전 예방'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제시카법이 헌법상 거주 이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이번 국회에서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 미국 내에서도 거주지 제한 조치가 성범죄 억제 효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고위험 성범죄자 거주지 제한 정책 연구'를 통해 다수의 관련 연구를 분석한 결과, 거주지 제한 정책의 범죄 억제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전체 주를 대상으로 정책 전후 성범죄 발생 수를 살펴봐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범죄 감소는 없었다는 것이다.
또 미국에서 성범죄자의 거주 불안정 문제로 출소 후 노숙자로 전락해 재사회화에 실패하는 사례도 있어 재범 위험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미국보다 인구 밀도가 높은 한국의 경우 성범죄자들의 거주 공간을 찾기 어려울 뿐더러 특정 지역에 '성범죄자 군집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취재진이 법률 전문가들에게 거주지 제한에 대해 물어본 결과, 대다수가 '이중 처벌'에 대한 우려를 표하면서도 이외의 방안에 대해선 "딱히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대체적으로 신중한 법률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지적하면서도 일부 전문가는 다음 국회에서 제시카법 통과 가능성을 상당히 높게 보기도 했다.
사실상 '최후의 보루'로 제시카법을 남겨 두고 있는 상황인데, 거주지 제한 제도를 도입하기 전 이중 처벌의 범위 밖에서 지금부터라도 근본적인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성범죄자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이 상당하지만, 현행법상 생계 유지 등에 필요한 거주지 자유를 막을 방법은 없다"며 "이중 처벌이 아닌 범위 안에서 성범죄로부터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